"파키스탄 국민의 아버지
인도 구자라트에서 태어난 압둘 사타르 에디는 1947년 파키스탄 독립시
카라치로 이주하면서 사회복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공공의료시설을 세워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또한 응급차를 사들이고 이를 “가난한자를 위한 밴” 이라 명명하였다.
에디는 보다 체계적인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1958년 에디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인도주의적 목표를 주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면서 재단은 점차 성장해 나갔으며, 에디는 자비의 천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3년 카라치에서 낡은 아파트 건물이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에디재단의 응급차와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구조를 시작하였다. 그 사건 이후 카라치나 파키스탄 전역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에디에게 먼저 구조를 요청하였고 에디재단의 응급차는 어디든지 출동하여 다친 사람들을 병원에 이송시켜주고 무연고 시신들을 장사 지내 주었다.
현재 에디재단은 환자이송서비스, 난민지원, 현장응급서비스, 혈액은행과 의약품은행, 복지센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집, 고아들을 위한 학교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카라치 지역에만 9개의 의료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파키스탄 전역에 약 300개의 복지센터를 운영하며 어려움에 처함 파키스탄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다. 재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항상 회색빛의 소박한 옷을 입고 청소를 손수하는 에디는 자신이 생활하는 방 하나만을 제외하고 건물의 나머지는 모두 일터로 이용한다.
에디의 이러한 검소한 생활과 타인을 위한 봉사정신은 어려서부터 항상 타인에게 친절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 일례로 에디의 어머니는 항상 동전 두닢을 에디에게 주면서 하나는 자신을 위해, 또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위해 쓰도록 가르쳤으며, 어디에 사용하였는지 설명하도록 하였다.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자들에게 마더 테레사가 있었듯이, 파키스탄에는 에디와 에디재단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